Home >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005.10.06 13:42

윤성택 조회 수:1458 추천:221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현대시학》2005년 9월호


        꽃피는 만덕 고물상

        살구나무가 시시각각 살구꽃을
        맛있는 농담처럼 몸피 밖으로 쬐끔씩
        밀어 내보낼 무렵, 꽃 필 무렵
        살구나무가 건너다 보고 있는
        주문진 시내버스 정류장 앞 만덕 고물상에는
        꽃냄새가 고물로 마당 그득 쌓이는 중

        사월 초순인데 어린 사내아이는 벌써 풋
        살구알이 매달린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
        마당의 고물 사이로 우그러진 세발자전거를
        몰고 다닌다 그보다 굵은 두 알 세알의 아이들이
        시큼텁텁한 살구 냄새를 풍기며 뛰어다닌다

        젖이 크고 엉덩이가 둥근 여자가
        쓸만한 물건처럼 폐물 어딘가에 숨어 있다
        쪽문으로 걸어나와 마당이 출렁이도록
        분주하게 제 새끼들을 거둬 모아
        숨은 보석처럼 다시 사라질 때까지
        살구나무와 젖 큰 여자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낮마다 밤마다 눈마중 해서
        낳은 아이들이 꽃 피우는 만덕씨네 고물상회

        
[감상]
<살구 냄새>라는 후각의 정조에서 <젖 큰 여자>와의 <눈마중>까지 맛깔스럽고 훈훈한 시선이 재미있습니다. 후각은 타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방식이지요. 사람에게는 가장 하위 감각이 후각이라지만 이 시에서는 예민한 감성의 질료가 되는군요. 버려진 고물들에서 <숨은 보석>의 발견과 <불알>을 상징하는 <살구나무>와의 동거, 정말 <농담처럼> 풋풋한 활력이 느껴집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950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94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777 221
948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7 221
947 블랙박스 - 박해람 2003.12.08 1176 221
946 고가도로 아래 - 김언 2003.07.09 1079 221
945 너 아직 거기 있어? - 김충규 2002.06.15 1336 221
944 내 후생을 기억함 - 이성렬 2006.03.07 1730 220
943 섀도라이팅 - 여태천 2006.02.14 1307 220
942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941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940 풍림모텔 - 류외향 [1] 2005.08.08 1408 220
939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938 그것이 사실일까 - 류수안 2004.10.13 1298 220
937 달의 눈물 - 함민복 [1] 2004.08.24 2187 220
936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 - 이영식 2003.07.29 1130 220
935 낡은 침대 - 박해람 [2] 2006.07.22 1918 219
934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 - 이승원 2006.05.12 1562 219
933 벽 - 유문호 [1] 2006.04.25 1786 219
932 천막 - 김수우 2005.09.24 1404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