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시인세계》2005년 신인상 당선작 中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그는 늘 트로트 찬송가를 부르며 나타난다
목에 걸린 소형 녹음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지하철 4호선 구간을 뱅뱅 돈다
칸칸마다 음표처럼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하루 종일 연속 재생되는 그의 노래
언젠가,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변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울대가 약해지고부터
그의 찬송가는 트로트 버전이 되었다
<샤론의 꽃 예수>를 4분의 4박자로 꺾었고
흥겨운 대목에선 바이브레이션을 넣기도 했다
한 소절 한 소절 깜깜한 세상을 귀로 읽으며
새 음표를 붙이고 장조를 바꾸다 보면
아주 가끔씩 바구니 속으로 떨어지는
동전소리도 그의 귀엔 취타악기음으로 들렸다
퇴근길 풀죽은 몸들을 싣고
지루한 음보로 달리고 있는 객차 안
아주 느린 몸동작으로 악보를 넘기듯
다음 칸을 향해 그가 나를 지나쳐 가고
중간 중간 박자를 놓친
지하철이 황급히 허리를 틀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감상]
구원의 상징인 <예수>가 지하철에 등장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처럼 십자가 지고 피를 흘리며 가다가 쓰러지고 일어서던 그 길이, <트로트 찬송가>가 있는 <객차>로 바뀐 것이지요. 이처럼 시는 <예수>의 의미를 고정된 관념에서 벗겨내면서, 긴장으로 임펙트 시킵니다. <깜깜한 세상을> 귀로 읽는다든지, <동전소리>가 취타악기음이 된다든지, 굴곡을 따라 휘어지는 객차 칸칸을 <중간 중간 박자를 놓친 지하철>로 관찰해내는 시선도 참신합니다.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변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울대가 약해지고부터/ 그의 찬송가는 트로트 버전이 되었다>라는 우회적 표현은, 변질된 믿음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일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