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리 바람소리/ 이향지/ 세계사
자미원민들레
잊혀진 땅에 꽃피운 작은 민들레
곁에 나를 심어보리
복선을 깔고 엎드린 철길 옆에서
함께 황달 들어 비를 기다리리
자갈밭 굳은 흙이 삽날을 부러뜨리리
불을 기다리는 석탄조각들이 내 뿌리를 밀어내리
기차가 비명과 함께 나를 주저앉히리
홀씨가 익기 전에 나는 아마 죽으리
밤이면 더 스산하리
좁고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온 바람이
슬레이트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쓸 만한 못들을 뽑고 있으리
흉하게 구멍 뚫려
문고리 쪽을 어깨가 기운 문짝들이
저마다 높은 음으로 덜컹거리리
개들이 개들을 불러
개 짖는 소리 개 뛰는 소리
모종삽을 다오
[감상]
이향지 시인은 1989년 「월간문학」통해 등단하신 분입니다. 프리챌의 "시의 힘"에 계신 것 같더군요. 이 시는 폐광촌에서의 민들레를 말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민들레 옆에 심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희망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연 '모종삽을 다오'는 시의 묘미인 반전을 내포해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글 감각이 뛰어나며, 비유가 참신합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급박함에 "여기 있어요!"하고 모종삽을 건네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