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박진성/ 『시와정신』2002년 겨울호
폭설
연일 폭설이었다
반지하 방 낮은 창 너머
고향에서 온 부음(訃音)처럼 눈이 내렸다
할머니, 할머니, 꽃상여 속에서 덜덜 떨던 복숭아뼈는
열매를 잉태하시어…
할머니는 말라 가는 작은 화분이었다
손으로 툭 치면 방안 가득
눈발처럼 날리던 향기.
내한(耐寒)이 약한 식물은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대도
살아나지 못했다
빈터에는 아이들 몇 뛰어다니고,
눈이 내리다 말고 한없이
공중에서 떨었다
나무의 뿌리 깊이 창문 열고 눈[雪]을 만지면
오 년 전 죽은 할머니 복숭아뼈 열매 맺어
함박눈이 덮쳐왔다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눈뭉치를 던졌다
[감상]
이 시가 좋은 이유는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폭설을 풀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마지막 연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눈뭉치를 던졌다"라는 행위에 있습니다. 정적에 휩싸여 있던 시흐름을 이 하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시 곳곳을 살아 숨쉬게 합니다. 마지막 연의 생동감의 무게가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고 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