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 창작과 비평사
지푸라기 허공
그의 옷에 묻어온
지푸라기를 털어내는 동안 십년이 지났다
술에 취해 잠든 그의 머리맡에 앉아
지푸라기를 털어내면서
나는 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일까
두 손에 고인 가벼운 목숨은
작은 한숨에도 파르르 떨고는 했다
길 위에 누운 등의 무게를,
누워서 바라보았을 별의 빛남을,
그 추운 잠을 지푸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푸라기를 차마 쓰레기통에 넣지 못했다
얼어붙은 창문을 열고 날려보낸 그 홑겹의 날개들은
쐐기처럼 단단하게 허공에 박혔다
창을 열어도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 때문이 아니다 지푸라기의 아우성으로
가득 찬 허공, 차라리 나는 거기에 불을 놓았어야 했다
일찍이 내 마음을 검게 그슬린 火田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을 일구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그의 등에 묻은 지푸라기만 하염없이 떼어내고 있는
밤, 그 메마른 되새김질로 십년이 지났다
자신이 점점 제웅으로 변해가는 줄도 모르고
[감상]
이 시는 남편에 대한 시 같습니다. 사업 때문에 좌절한 남편에 대한 생각. 그 옆에서 지푸라기를 떼어내며 십년이 지났나 봅니다. 그를 섬기는 시선이 화자의 심경과 어울려 진솔하게 드러납니다. 스스로가 제웅이 되어가는 희생의 모습, 울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