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선 / 제7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작/ 현대시 2001 [문학세계사]
중독
꽃은 한신 빌딩 오층 외벽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때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한신 꽃집은 조금 전에 문을 닫았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빨간 점멸등이 피었다 졌다
파란 점멸등이 피었다 졌다
한신 빌딩 창문이 노랗게 피기 시작했다
아크릴 꽃이 파르르 떨었다
한 송이 한신 빌딩은 꽃잎 한장 움직이지 않았다
당기시오 꽃잎이 나를 밀어넣고 퉁 제자리로 돌아갔다
[감상]
모든 빛은 꽃처럼 피었다가 진다! 시인만의 독특한 발상이지요. 그 자체가 하나의 시로서의 호흡을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꽃잎과 합일되는 모습. 빌딩의 창문조차 노랗게 피었다면, 화자는 그 꽃잎의 중심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수많은 꽃들이 밤마다 피었다가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