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용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 문학과지성사
꿈 101
<사우나탕인데 대청마루 같은 곳(한증막 같기도 하다)에 나와 어떤 남자가 앉아
있다 우리는 그곳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와 눈빛이 마주치자 내가 입을 맞춘다 마치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 매우 자연스럽다 그의 귓불과 목을 애무한다 그러면서 그
의 가슴을 더듬자 물컹, 만져진다 그를 다시 보니 여자다 난 그게 당연하다는 듯 다
시 그 일에 몰두한다>
몽정을 쏟은 꿈처럼 비릿하다
빳빳한 중심
언젠가 사우나탕에 갔을 때
내게 밥을 사 주겠다던 점잖게 생긴 중년
숙취도 못 푼 채 나와 버렸지만
마음이 숨겨둔 은밀한 사잇길을
내 몸은 가보고 싶었던 것일까
리비도의 방향이 불온하다
즐비하게 늘어선 내 안의 검문소들
* 이 시의 제목은 김지하의 시 제목을 그대로 패러디함.
[감상]
특이하게 김정용은 시 전체를 도입부에 괄호가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식으로 말하자면, 꿈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내면적인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지요. "은밀한 사잇길"은 동성애에 대한 아련한 접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시인은 자기 안에 수많은 검문소를 세웁니다. 어쩌면 그 검문소를 다 통과한 것이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자아의 입소가 아닌지, 나는 또 어떤 검문소를 세웠다가 부셨다가 하면서 살아가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