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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분교 - 한승태

2002.12.04 15:17

윤성택 조회 수:984 추천:179

바람분교/ 한승태/ 『현대시』12월호(2002)



        바람분교


        조롱고개 넘어 샛말
        내린천에 몸 섞는 동방약수 건너
        쉬엄쉬엄 쇠나드리 바람분교
        노는 아이 하나 없는 하루 종일
        운동장엔 책 읽는 소녀 혼자
        고적하다 아이들보다 웃자란 망초꽃이
        새들을 불러 모아 와, 하고 몰려다녀도
        석고의 책장은 넘어가지 않는다
        딱딱한 글자를 삼키려는지
        친구들의 돌아오는 발꿈치를 읽으려는지
        종은 울리지 않아도 아침 해와 등교했다
        꼬박꼬박 하교하는 분교
        독서를 즐기는 저 소녀는
        나뭇잎을 읽고 꽃을 읽고
        성큼 붉어지는 하늘마저 읽는다
        철봉대에 촘촘히 짜 내려가는 땅거미
        빈 걸상에 앉은 바람이 책가방을 싸고
        교문 밖에선 산나리와 패랭이가 꼬드겨도
        낮에 읽은 구절에 어둠이 한 겹 덮일 뿐
        눈이 동그란 새들마저 하나 둘 하교하고
        밤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처음처럼 스러지는 폐교
        소녀는 마침내 별빛 한 장 넘긴다


[감상]
깔끔한 서정, 그리고 폐교의 쓸쓸함을 부산함으로 바꿔내는 솜씨. 잠시 이 시를 읽고 있으려니 단단한 바위 같은 감성의 덩어리가 스르르 누수 됩니다. 책 읽는 소녀의 석고상, 참 소재를 잘 택한 것 같습니다. 추억 속 국민학교 때가 아련해집니다. 친구들이 다 하교한 텅 빈 교정에서 마치 오래도록 혼자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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