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위에서 떨다』/ 이영광/ 창작과비평사 시인선 226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자고 난 뒤 돌아앉아 옷 입던 사람의 뒷모습처럼
연애도 결국은,
지워지지 않는 전과로 남는다
가망 없는 뉘우침을 선사하기 위해
사랑은 내게 왔다가, 이렇게
가지 않는 거다
증명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교정의 단풍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이곳이 바로 감옥이구나, 느끼게 만드는 거다
사람을 스쳤던 자리마다
눈 감고 되돌아가 한번씩 갇히는 시간
언제나 11월이 가장 춥다
모든 외도를 지우고
단 한사람을 기다리는 일만으로 버거운 사람에게
이 추위는 혼자서 마쳐야 하는 형기?
출감확인서 같은 졸업증명서를 기다리며
외따로 선 나무 아래 외따로 앉아 있는
추운 날
붉고 뜨거운 손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혼자 불타다가 사그라지고 다시 타오르는
단풍나무 한그루의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이 있고
떨어져서도 여전히 화끈거리는 단풍잎과
멍하니, 갇힌 사람이 있고
인간의 습성을 비웃으며 서서히 아웃되는 새떼들이 있다
[감상]
삶과 시와는 얼마만큼 떨어져 있을까, 혹 그렇게 외따로 떨어져 있는 시가 온갖 난해와 모호의 이름들을 지녔던 것은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진솔(眞率)'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진실하고 솔직한, 대학졸업과 연애, 그리고 단풍나무라는 시적상관물. '자고 난 뒤 돌아앉아 옷 입던 사람의 뒷모습'이 가슴 한켠 묻어납니다. 연애란 거기에서 쓸쓸함이 묻어 있구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