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권현형/ 『현대시학』2004년 8월호
스며들다
울음송곳으로 누가 자꾸
어둠을 뚫고 있나
낮에 산책길에서 저수지를 만나
수면에 어른대는 당신을
오래 들여다 보았을 뿐인데
밤새 환청에 시달린다
물이 운다는 생각
난생 처음 해 본다
그것도 굵은 동물성의
울음꽃떨기를 피워
깊이 모를 바닥에서 송이째
끝없이 밀어올리는 듯하다
저수지 안에서 살아가는
황소개구리가 내는 소리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도
누구의 설움이 조금씩 누수되어
내게로까지 스며들었는지
그때 물이 울었다는 생각
거두어지지 않는다
[감상]
저수지 물이 운다, 라는 발견이 이 시에 작용하는 메타포의 중심입니다. 시적화자의 정서에 공감이 가는 이유는 억지스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진솔한 흐름 때문입니다. 물의 울음소리가 결국 '황소개구리' 소리였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의 설움'으로 전이하는 진술방식은, 꾸밈없는 자아에 대한 반추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나를 투사하고 규명하는 영원한 대입존재가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