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이영주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 《민음의 시》165
하늘 위에 떠 있는 DJ에게
새들이 멈추었을 때 서른이 되었다. 모든 풍경을 떼 내 나에게 엽서를 썼다.
잔뜩 취한 서른의 내가 맞추지 못한 문의 구멍을 스무 살의 내가 맞춰 주는 순간. 첫날밤의 이불처럼 벽들이 하얗게 펄럭거렸다.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DJ를 보라. 그는 탈색되는 걸 사랑했고 몰래 잠드는 것도 좋아했다.
부엉이 문신은 부드러운 네 왼쪽 가슴을 향해 날았다.
검은 음표들은 전부 취해 있다. DJ는 환자가 누운 곳에서만 턴테이블을 돌렸다.
세상의 모든 창문은 음표의 방향이 되었다.
첫날밤은 귀가 먼 병원 의자에서 가장 고결한 사랑을 배운 DJ에게.
[감상]
자유롭고 꿈이 있었던 시절을 ‘새들’이었다고 비유해도 되겠습니다. 이제 생활이 생활을 지켜야하는 각박한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에게 엽서를 쓰듯 돌아보게 됩니다. 꿈 많았던 스무 살의 생각이 지금 현실의 무력함을 벗어나게 할 때, 문득 첫사랑이라든가 설레임이라든가 떠오르게 됩니다. 한때 음악다방의 ‘DJ’는 신청곡과 그 사연을 들려주는 근사한 목소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화자의 ‘첫’에 입김으로 서려 있습니다. 필경 그 상황이 ‘귀가 먼 병원 의자’ 였을지라도, 가만히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의 턴테이블만은 아직도 가슴 속에서 돌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