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7:58

윤성택 조회 수:1089 추천:116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 (1999년 『문예중앙』로 등단)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70

시,시,비,비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
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
좋아 뒤로 자빠지라는 얘기였는데 그는 나 보기가 역
겨워 가신다면서 그 흔한 줄행랑에 바쁘셨다 내 탓이
냐 네 탓이냐 서로 손가락질하는 기쁨이었다지만 우
리 사랑에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건 결국 시 때문이다
줘도 못 먹는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감상]
상식과 도덕이라는 질서를 가르쳐 주는 건 사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체적인 삶을 경계하는 것도 사회이기도 합니다. 문학에 있어서, 특히 시는 고상하거나 고귀해야 한다는 게 이를테면 사회적 상식이지요. 그러나 시인의 자의식에 꿈틀대고 있는 그 무엇. 이것이 극대화 되었을 때 시는 새로운 인지의 지평을 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밀고 가는 것에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생기발랄하고 통쾌하고 유쾌한 이 느낌은 기존 여타 시들에서의 식상함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고백을 받아들이는 상황도 그렇고, ‘줘도 못 먹는’ 마지막 싯구도 사실은 자의식의 사투에서 이끌어내는 진정성의 한 부분입니다. 시집 곳곳 이러한 파격과 언어의 충격이, 그동안 눈치 보며 살아왔던 날들에게 손 감자를 내밉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1 비닐하우스 밤기차 - 이승주 2011.02.21 1089 116
» 시,시,비,비 - 김민정 2010.01.16 1089 116
69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2009.11.04 917 116
68 검은 방 - 박장호 2008.10.15 1258 116
67 개인의 질량 - 이산 2007.12.06 1434 116
66 매포역 - 전형철 [1] 2007.11.06 1210 116
65 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128 116
64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926 115
63 밤의 연약한 재료들 - 이장욱 2008.11.03 1384 115
62 사물의 말 - 류인서 2008.02.28 1320 115
61 퉁소 - 김선우 2007.10.12 1217 115
60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
59 기록들 - 윤영림 2009.02.16 1061 114
58 도망자 - 이현승 2007.10.17 1101 114
57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56 로컬 버스 - 김소연 2010.01.19 952 113
55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54 연리지 - 박소원 [1] 2011.01.07 939 112
53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52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