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서시》 2009년 가을호
로맨티스트
어제는 당신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까지
이곳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햇빛이 이렇게 맑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친구는 자살을 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십년 만에 만나
소풍을 떠나는 꿈을 꾼다
기차를, 기차를 타고
내년 겨울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어떤 나라의 겨울은 또 다른 나라의 겨울과
어떻게 다른지
눈이 녹고 나면 강물은 더 차가워지는지
떨어진 벚꽃의 분홍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쭈글쭈글한 아이를 낳고
그 조그만 아이를 업고서
시장을 볼 것이다
몇 개의 봉지들을 들고 거리에서 만나
우리는 모든 걸 감추거나
모든 걸 드러낸다
햇빛이 이렇게 눈부셔서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친구들은 빅토리를 그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도 다른 나라에서 돌아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고
하객이거나 문상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감상]
당신과 나,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며 지금껏 생존(?)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이켜보더라도 나와 당신은 여전히 친구이며, 우리이겠지요. 나와 당신 혹은 우리에게 있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우리가, 의지로서 ‘나’를 기억해내는 것일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이러한 의지로 인해 시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시는 긍정과 부정, 탄생과 죽음, 웃음과 울음, 흰색과 검은색, 하객과 문상객이라는 양 극단을 ‘삶’이라는 큰 틀로 비끄러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들이 이러한 양 극단에서 정형화되고 있다고 할까요. 이러한 진술방식, 그것이 로맨티스트-낭만주의자들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이 보편성의 범주에 우리가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