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신화》/ 박현솔 (1999년 『한라일보』, 2001년 『현대시』로 등단) / 《문학사상》
부레
유목의 날들을 건너오듯
도시의 외곽으로 달려 나오는 트럭
덜컹거리는 폐부에서 뿌연 연기가 토해진다
거죽 밖으로 불거져 나온 도시의 길들
저 길 위에선 누구도 불멸을 꿈꾸지 않고
썩은 냄새가 또 다른 비릿함을 부르는
암울한 식도 밖으로 나는 가래처럼 뱉어졌다
목초들이 태양을 감아 오르다 까맣게 타버린 곳
바닥을 치고서야 깊이를 가늠하는 부레처럼
나는 저곳의 음침한 밑바닥을 보고 말았으니
제 안의 비루한 잠을 모두 드러내 보이며
삐걱거리는 장롱이며 서랍장, 책장들
지나온 시간들을 헐거운 잠의 음악으로 연주하는
저들의 공명음이 먼 유목의 길을 떠나게 한다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설익은 연애가
젖은 바람에 펄럭인다 수신되지 못한 엽서에
바람의 우표를 붙이고 그리운 옛 문장들을 다시
생각하느니 사라진 문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광활한 저 초원의 길에 나의 길도 한 줄 보태어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멀고 먼 유목을 떠난다.
[감상]
도시를 향해 가는 사람과 도시를 빠져나오는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물질과 욕망의 상징이라면, 거처를 정하지 않고 떠도는 유목은 외롭지만 자유로운 메타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도시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입장의 외곽은 ‘썩은 냄새가 또 다른 비릿함을 부르는/ 암울한 식도 밖’일 것입니다. 어느덧 ‘설익은 연애’도 잊고 ‘그리운 옛 문장’도 사라진 생을 뒤돌아볼 때, 유목은 그 꿈을 찾아 옮겨 다니는 먼 길입니다. 월세며 전세며 도시의 ‘음침한 밑바닥’을 겪어본 사람들이 떠난 그 자리에 그렇게 누군가 배달되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