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울고 있는 아이 - 배용제

2001.08.03 12:35

윤성택 조회 수:1494 추천:254

『삼류극장에서의 한때』시집이 있음 / 배용제 / 민음사


        울고 있는 아이



시장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아이.
울면서도 과자를 먹고, 중고 전자상 티비를 보며 울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울고
생선들이 토막나고, 그릇들이 흥정되고, 앉은뱅이 수레가 지나가고,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겨우 빠져나가고, 땡중이 구걸하고, 그사이 몇 번인가 닭 목이 비틀어지고, 다시 전도사가 지나가고, 튀김들이 익어가고,
모든 걸 구경하는 아이가 울고, 서성이며 울고, 또 울고
공중으로 첫 별이 꽂히고, 바람이 뒤섞인 냄새 사이를 휘청이며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그곳에 서서 아이는 울음이 젖어 연거푸 울고.
세월이 가고,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수염이 돋아나고, 주름이 패이고, 머리칼이 하얗게 바랠 때까지 그저 울고


[감상]
끝에서 위로 두 행을 읽을 때 잠시 전율이 일어납니다. 중경산림이었던가요? 양조위가 어느 가게 의자에 앉아 있는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왜 갑자기 그 영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울고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이 놀라운 시간성. 번잡한 세상의 삶을 이처럼 간단히 환각처럼 도식화시키다니요. 어쩌면 우리는 이 아이처럼 삶속에서 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주 안에서 본다면 한 계절 여름나무에 붙어 우는 매미의 일생처럼, 나의 짧은 生이 지나갑니다. 2001년 8월 3일 12:44.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091 강가의 묘석 - 김병호 2006.01.23 1592 255
1090 오늘 당신을 만난 데자뷰 - 박선경 2006.01.11 1823 255
1089 파도 - 김영산 2005.09.01 2240 255
1088 나는 시간을 만든다 - 박상순 2001.07.31 1437 255
1087 반성 16 - 김영승 2001.05.29 1314 255
1086 목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유용주 2001.05.09 1258 255
1085 공터의 행복 - 권정일 [2] 2006.01.19 2085 254
1084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 차주일 [1] 2005.09.29 2314 254
» 울고 있는 아이 - 배용제 2001.08.03 1494 254
1082 유리꽃 - 이인철 2006.04.03 2589 253
1081 백제탑 가는 길 - 신현림 2001.05.03 1327 252
1080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
1079 날 저문 골목 - 안숭범 2006.04.07 1612 250
1078 사랑은 - 이승희 2006.02.21 2977 250
1077 흔적 - 배영옥 [2] 2005.11.16 2276 250
1076 고백 - 정병근 [1] 2005.08.17 2711 250
1075 聖 - 황학주 2001.10.18 1310 250
1074 마포 산동네 - 이재무 2001.05.08 1693 250
1073 책들 - 강해림 2006.07.07 1881 249
1072 별 - 김완하 2002.08.12 2923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