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이윤훈/ 《애지》2005년 가을호
콘트라베이스
광릉 숲 크낙새 나무 쪼는 소리에 그는
새삼 제 속 텅 빈곳을 들여다보았다
빛이 드는 창가에서 오래도록 그는
침묵이었다
그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한 그 속에서
크낙새가 콕 콕
그의 일 초 일 초를 쪼아내고 있었다
부리 부딪는 소리가 손목에서 톡 톡 뛰었다
톱밥처럼 날아가 쌓인 시간
그 더미에서 생목 냄새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그를 감쌌다 그가 숨을 깊이
들이쉬자 그의 목숨을 잡아주던 줄들이
팽팽해졌다 그는 숨 줄을 고르고
어둠과 빛 속을 갈마들며 활을 문질렀다
숨어 있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제 속 텅 빈곳이 제 둥지임을 알았다
크낙새 알같은 온음표 한 알 따습게
생의 마지막 마디에 품고 싶었다
[감상]
콘트라베이스는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바이올린 계통의 현악기이지요. 크기는 2m 정도여서 연주할 때는 수직으로 세워 악기를 안고 연주합니다. 이 시는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전 숨막히는 정적과 웅장한 연주를 성능 좋은 스피커처럼 들려줍니다. 악기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것도 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크낙새 나무 쪼는 소리>를 손목의 <맥박>으로 환치시키는 오버랩이 놀랍습니다. 악기의 공명통이 크면 클수록 소리는 깊어지는 법, <제 속 텅 빈곳이 제 둥지>임을 알아가는 콘트라베이스의 정체성이 아슴아슴 숲으로 데려다줍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크낙새>와 <콘트라베이스>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룬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