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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깨 라면 끓이고 싶다

2022.05.24 21:30

윤성택 조회 수:80



잠든 밤에 방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도통 누구의 방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방이 불 켜고 원고지 눌러놓았던 압정을 보여주었다. 외투에 스쳐 떨어지기도 했다고, 무릎이 그 뾰족한 끝을 밟았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문 열고 부엌을 보여주었다. 축축한 시멘트 냄새, 잠겨도 조금씩 새는 수도꼭지가 나를 알아보고는 고무호스를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밖으로 나가는 마당이 있었다. 평생 간직했던 비밀번호가 현관에서 어느 고학생을 따고 들어왔다. 아직도 그대로라고, 방을 에둘렀던 원고지들이 펄럭거렸다. 나는 그제야 꿈 한쪽을 헐어 그 방을 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진짜 돌아올 그를, 책상에 앉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문장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받아 적었으나 이내 글자가 희미해져 가는 걸 보았다. 자물쇠 따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수돗물 똑똑 떨어지듯 내가 덜 잠가져 밖으로 새고 있었다. 그가 낌새 느끼고 불현듯 방안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때의 기미(幾微)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가스버너 손잡이 몇 번씩 돌리며 나를 켜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러니 오늘밤은, 달을 깨 라면에 넣어 끓이고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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