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순수

2013.08.19 10:34

윤성택 조회 수:287

오래, 그래 오래 새벽이 되어본 마음이 금간 시간을 빛으로 비출 순 있지 않을까. 하루 중 나에게만 기다려준 순간이 있듯, 문득 허공을 바라보았을 때 그 틈에 설핏 차오르는 것이 그 빛이라면 어떨까. 나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 오래, 그래 오래 거기에 있는 거라고.

 

살아간다는 건 이해와 오해를 뒤집어쓴 짐승에게 내 이름을 던져주는 것이다.

 

철창을 흔들던 그에게 내가 처음 이름을 주었을 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내가 나라는 동물원이다. 수많은 눈이 낮이었다가 밤으로 감는, 바라볼수록 신기한 저 순수를 얼마나 사육해야 하나. 가슴 두드리고 하늘 보고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 날들. 나는 저 짐승의 관람료로 인생을 버텨왔으므로.

 

그러나, 다시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점으로 박동한다면

 

순수가 그곳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내 이름을 받아주며 갇힌 나를 위해
한곳에 오래도록 서 있는 건 아닌지.
우적우적 한 生을 씹으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25 숲을 걷는다 2009.01.30 352
124 2009.03.02 254
123 밤기차 2009.03.09 255
122 구름 2009.03.18 292
121 마주침 2009.03.24 233
120 감기 2009.03.25 213
119 끌림 2009.03.25 236
118 저녁 2009.04.01 263
117 이게 당신이다 2009.04.15 424
116 도란도란 2009.05.07 358
115 2009.05.23 931
114 근사한 비밀 2009.10.29 301
113 나무 2009.11.04 236
112 이 저녁은 2009.11.05 240
111 바라는 것 2009.11.09 200
110 그러니 2009.11.10 302
109 나보다 더 현실적인 2009.11.13 325
108 어디에선가 본 것도 같다 2009.11.17 278
107 그리운 것들이 연대하는 2009.11.18 245
106 기일 2009.11.19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