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추억과 벽 사이

2013.05.15 17:12

윤성택 조회 수:371 추천:12



[사진: Namji Kim]



여전히 부재는 단단한 무게의 침묵이다. 마음에도 얼룩이 지고 균열이 생기면 그 틈으로 역마살 같은 이끼가 오른다. 흐린 날일수록 현기증 나는 구름이 머물다간다. 점점 회색빛 색조로 닮아가는 담벼락이 필름처럼 언덕까지 이어진다. 하나의 시간으로 연대해 빛을 받아 빛나기도 하고 그 빛을 거둬들이는 집의 추억. 시멘트 내부의 앙상한 골격으로 서로 기대어 올 때 그게 빈집이라도 버텨주고 싶은 담들의 결림. 콘크리트를 콘트라베이스라 고쳐 발음하다보면 그 저음에 닿는 바람이 빨랫줄을 느리게 그어보는 활이다.

깊이 모를 심연처럼 창백하고 적막한 그곳은 차고 기억이 시리다. 들뜬 시멘트는 늘 그 색깔에서 집착을 놓아준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을 때 집들은 기억을 습기로 어루만지며 서로의 벽이 된다. 서로 다른 벽이 만나서 같은 색으로 퇴색해가는 골목. 이 길에서는 함부로 담겨진 흙도 싹을 틔운다. 그리고 살아간다. 아무도 없는 적막이 그 계단의 양분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별을 받아들일 것 같은 벽 앞에서, 얼룩보다 얼룩을 벗고 있는 벽의 체온으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때 벽이었던 수많은 망설임을 기억한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85 드라마 2013.09.23 235
84 대리 2013.09.13 277
83 2013.09.10 268
82 몸이 생각을 앓고 나면 2013.09.05 375
81 감도 2013.08.31 265
80 우울 2013.08.29 240
79 기도 2013.08.28 322
78 기로 2013.08.26 285
77 건널목 2013.08.22 283
76 타인이라는 도시 2013.08.22 302
75 순수 2013.08.19 287
74 열대야 2013.08.05 171
73 발굴 2013.07.31 193
72 새벽 공기 2013.07.26 237
» 추억과 벽 사이 file 2013.05.15 371
70 대피로, 바다 file 2013.04.12 274
69 기다림 file 2013.03.19 302
68 보안등 포말 file 2013.03.11 238
67 붉은 버스와 눈 file 2013.02.28 270
66 도시 file 2013.02.19 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