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창을 열고 밤바람의 붓터치에 가만히 몸을 내맡긴다. 몇 달을 거쳐 유물의 흙을 털어내듯 바람이 지금 나를 혼신으로 발굴하고 있다. 지상을 다 훑고 나서야 바람은 오늘의 학술적 습도를 정한다. 비가 내리는 건 이미 나를 코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방부제인듯 빗소리로 사위를 다 채우고 나면 나는 당신에게 학명(學名)으로 남는다. 그리고 줄줄이 주석이 붙는다. 편지, 소인, 역...
사지를 펴서 고정한다. 한 팔로 몸에 삼베를 올린 뒤 곳곳에 핀을 꽂아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직사광선을 피해 마저 건조하게 꽂고 말린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년까지 자연스럽게 기억을 말린다. 오래 잘 말려야 표본도 오래 유지되는 것처럼. 그리하여 오랜 후 누군가 처음 호기심으로 보는 순간, 그의 영혼은 비로소 바람이 된다.
등에 핀이 찔린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웅크리는 사람.
서서히 추억이 말라가는 것을 알면서도 일기를 적는 사람.
고독이 독이 되어 굳어가는 사람.
그러니 불현듯 나는 왜 여기에 와 있을까. 이 광속의 주파수 속에서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