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대리

2013.09.13 11:02

윤성택 조회 수:277

새벽이 편의점 간판에 스트로를 꽂고 빤다. 대리운전 기사는 나를 위해 택시를 타고, 나는 대리운전 기사를 위해 캔맥주 하나 더 뜯는다. 편의점 간판 불빛을 다 마셔가는 새벽이 담배를 빼 문다. 그 앞 공터엔 담배 끝처럼 붉은 코스모스가 흙으로 들이마시는 폐활량을 자랑한다.

나도 한때 이런 계절에 스트로를 꽂고 킥킥 거렸던 적이 있지. 잇몸을 보이며 웃는 여자는 다 이뻐, 라고 인간관을 수정하는 사이 이곳은 참 모텔도 많아, 유통기한을 기르는 편의점과 다를 바 없구나.

대리는 아직 오지 않고 나를 대리할 약속만 일주일씩 먼저 가 있다. 문자메시지를 하이힐이 또각또각 열어가는 저 소리, 새벽과 아침이 첫 섞이는 공기 내음, 술의 행성에서 이주한 나의 호흡기, 흙 묻은 쓸쓸을 주워 먹는 시간.

이제 편의점 간판은 아무리 밝아도 사소하다. 이제 나는 아무리 어두워도 소요하다. 기다린다는 건 목이 기다란 기린을 차에 태우는 걸까 싶은.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105 독서법 2011.01.07 223
104 눈이 온다 2010.12.27 225
103 기일 2009.11.19 230
102 마주침 2009.03.24 233
101 비밀 2008.11.04 234
100 드라마 2013.09.23 235
99 끌림 2009.03.25 236
98 나무 2009.11.04 236
97 새벽 공기 2013.07.26 237
96 보안등 포말 file 2013.03.11 238
95 전기자전거 2008.11.07 239
94 서술 2008.12.02 240
93 이 저녁은 2009.11.05 240
92 우울 2013.08.29 240
91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 자연의 신념이다 2008.11.01 242
90 신묘년 새해 2010.12.31 243
89 그리운 것들이 연대하는 2009.11.18 245
88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10 2011.02.16 249
87 2009.03.02 254
86 밤기차 2009.03.09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