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가을이 깊은 것 같다.
며칠 전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던 단풍나무도
이제는 말라버린 잎들을 매달고
앙상한 알몸 하나로 버티고 있다.
나무를 생각하면 지금의 삶이 왠지 부끄러워진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뻗어두었던 미련을
털어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겨울을 당당하게 맞서는 저 나무들의 정령에서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왔다. 세상 어딘가
제 관짝으로 쓰일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좀처럼 피곤함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진정성은 영화나 책에서나 이뤄지는 현실일 뿐인지.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아무도 그의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우리는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나무는 묵묵히
구도의 자세로 우리를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