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3

2011.01.12 09:52

윤성택 조회 수:211 추천:2


여행길에 만나는 저녁이 쓸쓸해지는 건 익숙한 오늘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저녁놀은 집들보다 낮게 엎드린 수평선을 가늠하기 위해 서녘을 어루만진다. 이때는 먼 곳에서 막막함을 이끌고 온 물결에도 추억이 일기 시작한다. 어디든 떠나 와 있다는 생각은 햇볕이 스미는 행성처럼 고즈넉하다. 나와 낯섦은 이처럼 테를 그리며 떠도는 생의 지름을 연상케 한다. 마치 천체의 인력처럼 계절의 궤도를 같이하면서 봄을 일주하는 것 같이. 어느 카페에서 뜨거운 차를 손에 감고 있으면 멀리 바다 위 해를 품은 것 같다. 그 온기는 오늘 처음 절벽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일출과도 같고, 꽃을 갈아입은 어느 식물의 고요한 탄성만 같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봄을 앓던 날들에게 처방전을 건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치유하듯 낯선 민박집 창문에 흘러내린 새벽의 습기처럼. 여행이란 내가 살지 않는 공기들을 시간의 심폐로 들여 마시는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우회하면 이윽고 오래 전 한 사람의 눈이 내게로 떠온다는 사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5 변신 file 2014.01.28 724
44 성에 file 2014.02.03 1889
43 빗물처럼 file 2014.02.12 2123
42 무게 file 2014.03.07 742
41 생각이 결려 file 2014.03.07 721
40 잠들기 직전 2014.03.07 819
39 기억은 난민 file 2014.04.09 710
38 눈빛에 대하여 2014.10.07 1793
37 벚꽃 file 2015.04.27 1141
36 비가 좋다 file 2015.05.11 2092
35 詩를 사랑하는 가슴에게 2015.06.02 2044
34 운명도 다만 거처 2019.03.20 603
33 생도 다만 멀미일 뿐 2019.11.29 807
32 접촉이 두려운 계절 2020.02.08 571
31 밀교 2020.03.25 470
30 스마트한 봄날 2020.04.23 542
29 폭염 2020.08.17 2588
28 태풍 2020.09.04 4714
27 후룹 2020.09.28 295
26 쐬하다 2020.11.11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