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발굴

2013.07.31 10:06

윤성택 조회 수:193


인터넷 창을 열고 밤바람의 붓터치에 가만히 몸을 내맡긴다. 몇 달을 거쳐 유물의 흙을 털어내듯 바람이 지금 나를 혼신으로 발굴하고 있다. 지상을 다 훑고 나서야 바람은 오늘의 학술적 습도를 정한다. 비가 내리는 건 이미 나를 코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방부제인듯 빗소리로 사위를 다 채우고 나면 나는 당신에게 학명(學名)으로 남는다. 그리고 줄줄이 주석이 붙는다. 편지, 소인, 역...

사지를 펴서 고정한다. 한 팔로 몸에 삼베를 올린 뒤 곳곳에 핀을 꽂아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직사광선을 피해 마저 건조하게 꽂고 말린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년까지 자연스럽게 기억을 말린다. 오래 잘 말려야 표본도 오래 유지되는 것처럼. 그리하여 오랜 후 누군가 처음 호기심으로 보는 순간, 그의 영혼은 비로소 바람이 된다.

등에 핀이 찔린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웅크리는 사람.
서서히 추억이 말라가는 것을 알면서도 일기를 적는 사람.
고독이 독이 되어 굳어가는 사람.

그러니 불현듯 나는 왜 여기에 와 있을까. 이 광속의 주파수 속에서 바람처럼.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45 변신 file 2014.01.28 724
44 성에 file 2014.02.03 1889
43 빗물처럼 file 2014.02.12 2123
42 무게 file 2014.03.07 742
41 생각이 결려 file 2014.03.07 721
40 잠들기 직전 2014.03.07 819
39 기억은 난민 file 2014.04.09 710
38 눈빛에 대하여 2014.10.07 1793
37 벚꽃 file 2015.04.27 1141
36 비가 좋다 file 2015.05.11 2092
35 詩를 사랑하는 가슴에게 2015.06.02 2045
34 운명도 다만 거처 2019.03.20 603
33 생도 다만 멀미일 뿐 2019.11.29 807
32 접촉이 두려운 계절 2020.02.08 571
31 밀교 2020.03.25 470
30 스마트한 봄날 2020.04.23 542
29 폭염 2020.08.17 2588
28 태풍 2020.09.04 4725
27 후룹 2020.09.28 295
26 쐬하다 2020.11.11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