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 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부치지 못했던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함부로 불질렀던 청춘은
라이터 없이도 불안했거나 불온했으므로
돌이켜보면 사랑도 휘발성이었던 것,
그래서 오색의 만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먼길을 떠나야하는
항공우편봉투 네 귀퉁이처럼 쓸쓸하다
초행길을 가다가 주유소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여전히
그리운 것들은 우회로에 있다
[단상]
이 시는 쓸쓸하게 읽힌다. 젊은 시인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강렬함' 대신 이 시인은 마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들리는 듯 안 들리는 듯, 아니 독백하듯 나긋하고 차분하게 시를 풀어내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시인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시인의 시편들이 매우 안정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들뜬 시들이 난무하는 이때 분명한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시에서
함부로
불질렀던 청춘은
라이터 없이도 불안했거나 불온했으므로
돌이켜보면 사랑도 휘발성이었던 것,
이라는 구절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한 편의 "쓸쓸한 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안하거나 불온한 청춘'의 뒤끝, 결국은 휘발되는 사랑! 실연으로 인한 상처의 흔적 따위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냥 홀로 차를 몰고 가라. 우리 생의 주유소는 어디에든 존재하지만, 그 잠깐의 주유를 통해 잠시나마 돌아온 길을 더듬어보는 것, 더듬어보도록 하는 것. 이 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현명한 자는, 아니 제 삶을 스스로 위무할 수 있는 자는 분명 뒤를 돌아볼 줄 안다. 앞만 보고 속도를 올리는 자들, 그들에게 사랑은, 사랑의 여운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 더구나, 불행하게도 사랑이란 것이 끝내는 '휘발'된다는 것을 감지해내지 못한다. 이때의 '휘발'은 '소멸'과 얼마나 그 간격이 깊고 넓은가. (김충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