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노르 파라 (칠레)
이름 모를 여자에게 바치는 편지
몇 해가 가고, 몇 해가
또 가고 그래서 바람이 당신의 영혼과
내 영혼 사이에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그렇게
그렇게 몇 해가 가고, 그래서
내가 정원을 배회하다가 지쳐버린 불쌍한 사나이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나이가
그대의 입술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던
추억의 사나이가 되었을 때
그대는 어디에 있을까? 오, 내 첫 입맞춤의 여인이여
그대는.
[감상]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낡은 국군수첩에 휘갈겨 적혀 있더군요. 니카노르 파라는 "시(詩)와 반시(反詩)" 라는 시집 등으로 칠레 국민시인쯤 된다는군요. 원래 저는 번역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언어가 아닌 이상, 이미 번역자의 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전생이라던가 윤회라던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유치한 얘기지만 그 얘기 아세요? "그대 내 눈빛 기억해 둬. 다음 生에 기억할 수 있도록."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첫눈에 반하는 사람을 혹시 전생에서 봤을까하면서 마음을 더듬는 것은 아닌지요. 하하하, 오늘은 이 詩 때문에 주위를 살피는 아름다운 현상이 일어나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