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쓸쓸한 전화』/ 한명희/ 시작 시인선
두 번 쓸쓸한 전화
시 안 써도 좋으니까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조카의 첫돌을 알리는
동생의 전화다
내 우울이, 내 칩거가, 내 불면이
어찌 시 때문이겠는가
자꾸만 뾰족뾰족해지는 나를 어쩔 수 없고
일어서자 일어서자 하면서도 자꾸만 주저앉는 나를 어쩔 수 없는데
미혼,
실업,
버스 운전사에게 내어버린 신경질,
세 번이나 연기한 약속,
냉장고 속 썩어가는 김치,
오후 다섯 시의 두통,
햇빛이 드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쓰여진 일기장,
이 모든 것이 어찌 시 때문만이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
한번도 당당히 시인이라고 말해보지 못한 시
그 시, 때문이겠는가
[감상]
詩와 삶을 동시에 밀고 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 안 써도 좋으니까 행복했음 좋겠어 라는 말, 왜 자꾸 마음 한 구석을 결리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시는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시에게 말을 거는 진솔함이 있습니다. 詩 때문에, 쓸쓸한 것들만 당당한 오늘입니다.
이 시를 보니 또 다른 내 모습 같아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