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담배꽁초 - 송정호

2003.10.30 17:57

윤성택 조회 수:1143 추천:171

「담배꽁초」/ 송정호/ '시현실' 2003년 가을호



        담배꽁초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본다
        누가 피우고 버렸는지
        생(生)의 한숨까지 시커멓게 타 들어가 있다
        숱은 꿈은 연기처럼 빠져나가고
        바람은 잿빛 발자국들을 불러모아
        납작하게 비웃고는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문신한 보도블록에서
        온몸으로 숨을 들이켜는 이들
        널찍한 전신주 그늘에 걸려
        뒷골목으로 연행되고 있다
        태양이 그늘을 키우며 스멀스멀 떠오른다

        누군가 버린 삶의 두께만큼 야윈
        그 몸뚱이로 웅크린 나는
        부푼 연기를 끌어 모아 하늘에 걸어 본다
        먹구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
        굵어진다

        누가 피우고 버렸는지
        마지막 한숨까지 차갑게 굳어 있다
        타 버린 꿈을 비벼 밟고
        나는 매일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다



[감상]
담배를 피우지는 않습니다만, 어쩐지 이 시를 보게 되면 담배를 피우는 화자의 심정에 동화됩니다. 새벽 담배를 문 사람들, 그들이 버린 꽁초에서 '나'를 발견하는 화자. 이 역시 버려진 것에서 삶을 이해하고 자기화 시키는 세상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배 한 대처럼 이 생을 들이마시다가 결국 '매일 조금씩 작아'져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다 꺼져버린 꽁초에 앙 다문 이빨자국이 선명한 것처럼 삶은 끝끝내 피워내기인 것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31 단검처럼 스며드는 저녁 햇살 - 이덕규 2003.11.06 1140 161
930 뒤통수- 장승리 2002.09.23 1141 208
929 하늘 민박 - 김수복 2003.05.07 1141 166
928 구름 편력 - 천서봉 [1] 2011.02.01 1141 128
» 담배꽁초 - 송정호 [1] 2003.10.30 1143 171
926 가문비냉장고 - 김중일 2002.01.08 1145 203
925 무덤 - 안명옥 2002.03.19 1145 205
924 성내동 옷수선집 유리문 안쪽 - 신용목 2002.04.12 1145 181
923 되돌아가는 시간 - 전남진 2003.06.17 1145 166
922 고백 - 남진우 2009.11.27 1145 131
921 시간들의 종말 - 김윤배 2001.11.28 1146 202
920 네 어깨 너머, - 김충규 2010.01.18 1146 121
919 분리수거 - 유춘희 2002.04.23 1147 177
918 베티와 나(영화 37도 2부) - 박정대 2002.07.24 1147 202
917 복덕방 노인 - 조영석 2005.03.22 1147 188
916 무의지의 수련, 부풀었다 - 김이듬 2007.01.19 1147 143
915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 임동확 2003.06.19 1148 172
914 비렁뱅이 하느님 - 정우영 2004.03.16 1148 221
913 마른 아구 - 김 경 2002.01.02 1149 213
912 오래된 우물 - 서영처 2003.07.23 1150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