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민음사≫ 2004
무릎에 심은 나무
취한 나무들이 아파트 담벼락에 부조(浮彫)처럼 박혀 있었다 나무는
아무런 변명이 없다 한 그루 떼어내 무릎에 심는다 조그만 사각의 하늘
이 나무 아래에 펼쳐지고 날개에 붉은 실이 엉킨 거대한 새 한 마리, 나
무에 부딪혀 물방울로 흩어진다 나무는 연기처럼 자라난다 태양은 가
지에 걸려 떠오르지 못했다 가지를 꺾기 전에 하늘은 어두워지고 태양
은 종이컵에 담긴다 뿌리가 무릎을 단단히 쥐어서 다리를 뻗을 수 없었
다 깊숙이 박힌 뿌리들 내 피를 빨아먹으며 자라나 입으로 흘러나온다
[감상]
기이한 질감이지요. 모든 문장은 뒤틀려 있지만 문장과 문장사이는 서로 의미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환상이 헛것에 대한 이미지라면, 기호로서의 환상은 주술관계를 철저히 배격해놓은 해체적 조합입니다. 술에 취해 아파트가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을까요. 이 시가 모호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실제의 극치입니다. 각기 사물의 속성을 세밀하게 파악하지 않는 한 제대로 문장을 비틀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