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2」 / 이동호/ 문학세계사,《2004 신춘문예 당선시집》中
독서 2
― 긴 직유(直喩)로 읽는 풍경
오늘밤은 우물 속만큼 고요하다
나는 책상 위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은 창 밖 세상을 읽는다
관 뚜껑을 열 듯 창문을 쬐금 열어두었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오랜만에 바라보는
'낯선 세상에서'라고 발문해도 좋을 어둠 속에는,
가로등이 하나둘 외로움을 써놓고 있다
낙엽들은 공중을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가로등이 만들어놓은 담벼락 그림자 위에 걸터앉아,
바스락바스락 낡은 생애를 속삭인다
나는 단풍잎처럼 창을 붉힌다
차 불빛이 빠르게 언덕을 날아올라
밤하늘에 별들을 하나둘 박아놓고 지나갈 때에는
언덕 너머 오래된 아파트를 읽을 수 있다
아파트는 아랫동네를 공부하듯 펼쳐놓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중이다
아랫마을은 교회 첨탑 군불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십자가에 젖은 눈을 말리고 있다
사람들은 우물 속 누군가가 빠뜨리고 간 낯선 표정으로,
공원의 아기천사가 안고 있는 항아리에서 빗나가
분수에 빠진 백동화 같은 자신의 불운을
부끄럽게 읽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야경을 주렁주렁 매달고 뻗은 비포장 길을 읽는다
길은 좁은 골목 사이로 늘어선 집들의 아킬레스건을
요철요철 건드리며 다음 페이지 같은
가풀막을 숨가쁘게 넘는다
[감상]
이 시는 '보는 것'을 '읽는 것'으로 바꿔 창밖 세상을 거대한 독서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이렇게 주제적인 틀이 '독서'가 됨으로써, 밤 풍경은 상식적이지 않은 새로운 읽을거리로 탈바꿈됩니다. 그래서 이 시를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낯익은 것을 어떻게 낯설게 재배치 했는가를 염두 하면서 읽으면 될 듯 싶습니다. 시적 대상을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되게 하기, 참 신나는 상상력입니다.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부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