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중」/ 박해람/ 『문학사상』2004년 8월호
명중
사내의 울퉁한 팔뚝에
한 시절의 순정이 명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무엇에다 명중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
저 하트 모양에 박혀 있는 화살처럼
깊이 박힌 다음에는 명중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뒤쪽에서 덜 풀린 힘이 부르르 떨고 있는
여진의 나날들이라는 것이지
또한 허공으로 날아간 것들
그 떠난 자리는 흔적이 없다는 것이지
다만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는
누구나 명중되어 있다는 것이지
기마족(騎馬族)들에게는 적에게 허점을 보일 때가 화살을 날릴 때란다
그 무엇을 과녁으로 삼을 때가
가장 방해받기 쉬운 때라는 것이지
숨 한 번 고르는 시간이
영원히 숨을 끊을 수 있을 때라는 것이지
내 몸이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아직 제대로 된 들숨 한 번 들이마시지 못한 시절인데
명중의 시절이 내게로 와 박히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부르르 떨리는 때가 있다
아직 깨끗한 과녁이 가끔 두렵다
그러나 이 부르르 떨리는 것들, 고통은 늘 뒤쪽에 있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더 이상 떨림도 없을 때가
내가 제대로 된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사내의 울퉁한 팔에 박힌 그 화살처럼
누군가의 마음에서 푸릇하게 사라져간다는 것이지.
[감상]
누구나 한번쯤 보았음직한 사내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 이 시는 그 하트 문신에 꽂힌 화살의 ‘여진’을 발견한 시입니다. 양궁 경기에서 과녁을 향해 날아온 화살이 화면가득 부르르 떨리는 모양을 본적 있습니다. 그 날아와 꽂히는 여정이 누구나 죽음으로 명중되어 있다는 사실, 그래서 숨질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끝끝내 과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너무 착하다거나 순수한 사람을 보면 두렵습니다. 그 마음에 꽂히게 될 수많은 상처이라는 화살을 예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적중확률 62억만분의 1이라는 콩알 크기의 과녁 정중앙 방송중계용 최첨단카메라를 박살내는 ‘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