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침몰 - 서동인

2005.02.16 11:43

윤성택 조회 수:1293 추천:189

<침몰> / 서동인/ 2002년《리토피아》로 등단

  침몰

  잠들기에는 좀 딱딱한 다리미판에 꽃무늬 티셔츠 한 장 드러눕는다

  다림질을 하려고 물을 뿌리자  오랜 감기를 앓았는지 낮동안 빨랫줄에 매달린 꽃들이
시들시들 마른기침을 한다 누군가의 등짝에 담쟁이처럼 확 뿌리내리고 싶지만 매 순간
버림받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제발, 세탁기로 돌려버린 구겨진 기억을 펴다오 서서히
시동을 켜고 파도를 가르는 외항선 한 척 주름진 셔츠 목덜미를 간질이자  흔들리는 뱃
머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물살에 닳은 소매 끝으로  황홀하게 감전된 꽃잎이 주르륵 흘
러내린다 차라리 가라앉아도 좋아  무면허 항해사는 중얼거리고  곰팡이 습기 찬 방 안
에서는 전원 플러그를 뽑아줘야지

  뒤집히는 배 위로 꽃물 스민 저녁노을 바다의 천장이 내려앉는다

[감상]
바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꽃들의 수런거림을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서정의 힘이란 이처럼 꽃무늬 티셔츠와 다림판을 통해 싱싱한 이미지가 길어지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이 '차라리 가라앉아도 좋아' 라는 목소리로 되울려 절묘한 감정이입 효과를 거둡니다. 결국 침몰은 마음 속 깊은 곳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성에로의 귀환이 되겠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611 편집증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는 나무 - 이장욱 2003.01.21 1028 188
610 모종의 날씨 - 김언 2004.03.07 1155 188
609 과월호가 되어 버린 남자 - 한용국 2004.06.21 1083 188
608 복덕방 노인 - 조영석 2005.03.22 1147 188
607 구름의 뼈 - 배용제 [1] 2005.04.29 1471 188
606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 송찬호 2001.09.20 1232 189
605 헌 돈이 부푸는 이유 - 채향옥 [1] 2001.09.22 1325 189
604 낮달 - 이영식 2002.04.08 1130 189
603 밤하늘 - 한혜영 2002.05.08 1395 189
602 유년 - 정병근 2002.09.16 1067 189
601 오래된 우물 - 서영처 2003.07.23 1151 189
600 저수지 속으로 난 길 - 천수호 2004.01.28 1194 189
599 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 이영옥 2004.02.12 1470 189
598 살구꽃 - 문신 2004.05.10 1490 189
» 침몰 - 서동인 [1] 2005.02.16 1293 189
596 노숙의 날들 - 박홍점 [1] 2005.05.31 1210 189
595 떨어진 사람 - 김언 2005.10.12 1610 189
594 장독대에 내리는 저녁 - 휘민 2007.02.09 1432 189
593 첫사랑 - 진은영 [2] 2001.09.11 1811 190
592 따뜻한 슬픔 - 홍성란 2001.11.27 1643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