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 서동인/ 2002년《리토피아》로 등단
침몰
잠들기에는 좀 딱딱한 다리미판에 꽃무늬 티셔츠 한 장 드러눕는다
다림질을 하려고 물을 뿌리자 오랜 감기를 앓았는지 낮동안 빨랫줄에 매달린 꽃들이
시들시들 마른기침을 한다 누군가의 등짝에 담쟁이처럼 확 뿌리내리고 싶지만 매 순간
버림받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제발, 세탁기로 돌려버린 구겨진 기억을 펴다오 서서히
시동을 켜고 파도를 가르는 외항선 한 척 주름진 셔츠 목덜미를 간질이자 흔들리는 뱃
머리 거친 숨을 몰아쉬는 물살에 닳은 소매 끝으로 황홀하게 감전된 꽃잎이 주르륵 흘
러내린다 차라리 가라앉아도 좋아 무면허 항해사는 중얼거리고 곰팡이 습기 찬 방 안
에서는 전원 플러그를 뽑아줘야지
뒤집히는 배 위로 꽃물 스민 저녁노을 바다의 천장이 내려앉는다
[감상]
바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꽃들의 수런거림을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서정의 힘이란 이처럼 꽃무늬 티셔츠와 다림판을 통해 싱싱한 이미지가 길어지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이 '차라리 가라앉아도 좋아' 라는 목소리로 되울려 절묘한 감정이입 효과를 거둡니다. 결국 침몰은 마음 속 깊은 곳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성에로의 귀환이 되겠군요.
아마도 여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발, 세탁기로 돌려버린 구겨진 기억을 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