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위험한 그림 - 이은채

2005.02.25 11:01

윤성택 조회 수:15698 추천:191

<봄은 소주를 마신다> / 이은채/ 《시와시학사》

  위험한 그림

  그때 느닷없이 해안의 한끝이 기울기 시작했네  기슭을 떠돌던 바람이 달려와
철 이른 동백숲 벼랑을 사정없이 후려치고는 사라져버렸지 나는 사뭇 근심스러
워져 욱신욱신 몸살 앓는 벼랑 근처를 서성였다네
  평일 낮 두시의 벤치가 늙은이마냥 다리를 벌리고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더
군 자꾸 막막해져서 더듬더듬 소주를 마셨네
  꽃이야 피든 말든 나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해안의 한끝이 마저 기울자  이른 동백숲 피멍든 벼랑 아래  붉게 물든 그림자
하나 절룩이며 돌아섰네
  해조음, 뻘밭마저 허전했던 그해 봄은 아무래도 내겐 영 위험한 그림이었네

[감상]
'나 다시는 태어나지 말아야지', 이 절박한 말이 눈부신 동백숲 안에 있다는 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군요. 누구에게나 위험한 그림이 있을 것입니다. 추억 속에서 영영 잊혀지지 않는 풍경, 위험할수록 더더욱 아름다웠던.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31 왕오천축국전 - 차주일 2005.03.03 1198 191
730 활엽 카메라 - 김정미 [1] 2005.02.28 1259 217
» 위험한 그림 - 이은채 [1] 2005.02.25 15698 191
728 오토바이 - 이원 2005.02.24 1231 181
727 상계동 비둘기 - 김기택 2005.02.23 1126 163
726 침몰 - 서동인 [1] 2005.02.16 1293 189
725 물방울 송곳 -안효희 2005.02.14 1257 183
724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 박후기 2005.02.04 1248 168
723 겨울판화 - 정주연 2005.02.03 1296 192
722 블루스를 추고 싶다 - 함태숙 2005.02.01 1150 196
721 포레스트검프 - 문석암 [3] 2005.01.27 1331 220
720 잔디의 검법 - 강수 [1] 2005.01.26 1114 219
719 선풍기 - 조정 [1] 2005.01.25 1807 178
718 리필 - 이상국 [2] 2005.01.21 1454 192
717 나는 사유한다 비전을 접수한다 - 신지혜 [1] 2005.01.20 1393 229
716 소나무 - 마경덕 [1] 2005.01.19 1867 201
715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1] 2005.01.18 1656 215
714 목내이 - 김자흔 2005.01.13 1183 168
713 내출혈 - 허금주 [3] 2005.01.10 1262 183
712 나의 처음 - 윤의섭 2005.01.04 1542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