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 이원/ 《서정시학》2004년 겨울호
오토바이
왕복 4차선 도로를 쭉 끌고
은색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닿은 길이 팽창한다
길을 삼킨 허공이 꿈틀거린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끊긴 길을 좋아하고
4차선 도로는 허공에서도 노란 중앙선을 꽉 붙들고 있다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도로의 끝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따라온다
뽑혀져 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이다
썩을 줄 모르는 길과 뿌리에서는 잘 삭은 흙냄새가 나고
사방에서 몰려든 햇빛들은 물을 파먹는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뿌리의 벼랑인 허공을 좋아하고
아파트 창들은 허공에서도 벽에 간 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도로의 끝을 막고 있던 아파트가 딸려가자
모래들이 울부짖으며 몰려온다 낙타들이 발을 벗어들고 달려온다
그러나 낙타들은 우는 모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고
모래들은 울부짖으면서도 아파트 그림자에 자석처럼 철컥철컥 붙어 간다
모래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여서
오토바이는 허공에 제 전 생애를 성냥처럼 죽 그으며 질주한다
아파트는 허공에서도 제 그림자를 다시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감상]
이 시에서 그려내는 오토바이의 속도는 폭풍이나 핵폭발처럼 강력합니다. '뽑혀져 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에서처럼 영화에서 보았음직한 이미지가 인상적입니다. 정지된 것들과 움직이는 것에서 빚어지는 관계의 자극이라든가, 모든 것은 종국에 가서 모래가 되어간다는 사실이라든가, 영역과 영역사이 이탈이 가져다주는 저항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