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태어나는 여자》 / 허금주/ 《리토피아》시인선 (근간)
내출혈
그는 내 몸속에 살고 있다
그는 내 몸속에 살고 있지 않다
그를 만나려고 하면
사랑 어딘가에 박혀 있는 화살들
내 머리를 명중시켜 오던 길을 잃고
가야할 길도 잃어
아무리 부지런해도 걸을 수 없는
그 어디쯤에서
나는 신발을 벗고
거리 곳곳의 시계를 삼킨다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길 위로
빛을 뿜으며 둥둥 떠다니는 점들
눈으로, 입으로, 코로 흘러 들어왔다
자주 성찬의 밥을 차리는 그에게서
내가 삼킨 물과 밥은
허겁지겁 사랑 속으로 뛰어들어
가볍게 이름을 불러주는 그의 입술 끝
빛나는 신방에서
콸콸 말들로 쏟아진다
나는 기억한다
내 사랑의 방 한 칸을 만든 그
그러나 낮과 밤이 심장에 고인
내 어지럼증 견디지 못한 그는
내 몸에서 나가 버렸다
그토록 오래 걸어왔지만
어디에도 없는 내 사랑
[감상]
사랑도 고통의 일종이라지요. 타격을 받은 후 그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가 사랑의 기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출혈이란 달리 말하면 안에서 흘리는 피, 멍과 같은 것입니다. 이 시는 그런 ‘사랑’의 속성을 몸과 비유하며 풀어내는 긴장감 있는 표현이 좋습니다. 그가 공기처럼 다가왔으나 고통의 것으로 흘러나가리란 걸, ‘심장에 고인/ 내 어지럼증’으로 확인하게 될까요. 평생의 고통을 위해 부디 ‘그토록 오래 걸어왔’기를.
그럼 부황을 뜨면 낫겠구먼!
척추측만증이 어떤 병인지 아세요?
목부터 엉치까지 다 뒤틀렸다네요.
어제부터 다시 부황을 뜨고 침을 맞습니다.
참 나 이러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누구를 위해 이러고 살아야 하나,
물론 나를 위해서겠죠?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멀리가기 위해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어느 시 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