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 마경덕/ 《현대시학》2003년 2월호
소나무
내원사 계곡. 백 년 묵은 소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가지를 찢고 뿌리를
뽑아 올린 바람은 간 곳 없고 솔이파리 누릇누릇 땡볕에 타고 있다. 소나무
는 눈을 뜨고 서서히 죽어가는 제 몸을 바라본다. 물소리는 뿌리를 적시지
못한다. 저 놈의 목에 밧줄을 걸고 기중기로 끌면 일어 설 수 있을까
병든 노모에게 속옷을 입힌다. 거웃이 사라져 밋밋한, 여섯 번의 열매를
맺은 그곳, 시든 꽃잎 한 장 접혀있다. 졸아든 볼기에 미끈덩 여섯 개의 보
름달을 받아 안은 찰진 흔적이 남아있다. 노모가 눈으로 말한다. 내가 베어
지면 그 등걸에 앉아 편히 쉬거라. 머리맡에 고요히 틀니가 놓여있다. 앙상
한 두 다리 분홍양말이 곱다. 기울어 가는 소나무, 반쯤 뽑힌 뿌리에 링거를
꽂는다.
[감상]
소나무를 통해 늙고 병든 노모를 환기하는 이 시에는 사랑과 연민이 깊이 배여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음직한 쓰러진 ‘소나무 한 그루’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환시키며 발견하는 정신과 열도가 좋습니다. 시 쓰는 사람에게는 마음 속 깊이 세상 보는 눈을 갖고 있습니다. 자식 여섯을 낳으신 어머니의 사랑 앞에서, 우리가 전해 받은 것은 내원사 계곡 쓰러진 소나무가 어머니일 수 있다는 따뜻한 감동입니다. 이런 시들을 묶은 첫시집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