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 박남희/ 《현대시》 2005년 4월호
블랙홀
나는 어린 시절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목공 일을 도와드렸다
그 때 아버지는 넓적한 송판을 대패로 밀어
문짝이나 마루를 만들고 집을 만들었다
그 때 송판은 솔향기 짙게 풍기며
간혹 가다 여기 저기
알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나는 내 유년을 데리고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
세상 밖 풍경을 구경시키다가 흘끗
마당 앞 세발자전거나 냉이꽃 옆에 세워두곤 하였다
나는 그 때 그 구멍이 단지
다람쥐 구멍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그 구멍은 차츰 내 안으로 들어와
블랙홀이 되었다
나는 그 때 너무 단단한 것은 저렇게
구멍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빠져나간 옹이는
내 생애가 수 없이 만들어 놓곤 했던
고집같이 단단한 것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안의 블랙홀은 때때로
제 멋대로 어둠을 잡아당겨 여기저기
수많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 때마다 나는 허기져서
빈 웅덩이를 채우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늦게
지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면
내 안의 블랙홀이 욱신욱신 쑤셔왔다
그 안에 갇혀있던 내 젊은 별이 아팠다
[감상]
단단한 옹이를 ‘블랙홀’로 비유하고 거기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고집’과 같은 단단함이라든지 어둠의 ‘웅덩이’이라든지,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비유의 굴곡이 유연하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질량의 블랙홀이라는 의미는, 일생의 가장 큰 질량이 있는 ‘청춘’과 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시인의 잔잔하고도 아픔 고백이 가끔
다른이의 아픔을 치유하기도 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