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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 박남희

2005.03.30 18:12

윤성택 조회 수:1501 추천:212

<블랙홀> / 박남희/ 《현대시》 2005년 4월호

        블랙홀

        나는 어린 시절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목공 일을 도와드렸다
        그 때 아버지는 넓적한 송판을 대패로 밀어
        문짝이나 마루를 만들고 집을 만들었다
        그 때 송판은 솔향기 짙게 풍기며
        간혹 가다 여기 저기
        알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나는 내 유년을 데리고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
        세상 밖 풍경을 구경시키다가 흘끗
        마당 앞 세발자전거나 냉이꽃 옆에 세워두곤 하였다
        나는 그 때 그 구멍이 단지
        다람쥐 구멍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그 구멍은 차츰 내 안으로 들어와
        블랙홀이 되었다
        나는 그 때 너무 단단한 것은 저렇게
        구멍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디론가 빠져나간 옹이는
        내 생애가 수 없이 만들어 놓곤 했던
        고집같이 단단한 것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안의 블랙홀은 때때로
        제 멋대로 어둠을 잡아당겨 여기저기
        수많은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그 때마다 나는 허기져서
        빈 웅덩이를 채우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늦게
        지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면
        내 안의 블랙홀이 욱신욱신 쑤셔왔다
        그 안에 갇혀있던 내 젊은 별이 아팠다

[감상]
단단한 옹이를 ‘블랙홀’로 비유하고 거기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고집’과 같은 단단함이라든지 어둠의 ‘웅덩이’이라든지, 흐름에 따라 변하는 비유의 굴곡이 유연하게 느껴집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엄청난 질량의 블랙홀이라는 의미는, 일생의 가장 큰 질량이 있는 ‘청춘’과 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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