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 장만호/ 《유심》 2004년 겨울호
불면증
이런 날 불을 켜지 않은 방에 앉아 있으면
커다란 뒤주 속에 있는 것만 같아
어둠의 알갱이를 나는 만질 듯한데
간혹 창문을 바라보는 거 있잖아
새벽 세 시의 창밖을 바라보는 거 말야
어둠의 알갱이를 만지다
내가 곤두선 밥알처럼 단단해질 것 같은,
누에고치처럼 말야
이런 새벽이면 한 가닥 실을 잡고 잠들면 좋겠어
네가 다른 한쪽을 잡아당기면
가늘지만 끈끈한 그 실을 타고 꽃들이 내려갈 것이고
더는 내려갈 수 없는 곳에서
꽃들은 네 옷 위로 피어나겠지만
그러면 내가 미이라처럼 발굴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나는 잠들지 못하는 푸른 잠이고,
비단이 되지 못하는 뒤주 속의 시간이고,
순장할 수 없는 새벽 세 시의 달빛이고,
[감상]
네 시는 새벽에 가깝고 세 시는 아직 밤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불면증은 새벽 세 시에 완성된다는 시인의 시작노트를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방안을 공간화 하는 상상력이 흥미로운데 ‘뒤주’, ‘누에고치’, ‘미이라’로 옮겨가는 연결고리들이 긴밀한 개연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확산되었던 의미들을 그러모아 주는 마지막 3행의 마무리 완급조절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