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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 김지하

2005.04.19 15:58

윤성택 조회 수:1496 추천:175

「무화과」 / 김지하 / <우리시대의 문학> 5집 中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가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감상]
술 취해 손 붙들고 토할 수 있는 친구, 코 풀고 나서 함께 잿빛 하늘 바라볼 수 있는 친구. 이런 친구와 우리는 얼마나 걸어온 것일까요. 이 시를 읽다보면 무화과로 비유되는 ‘꽃시절’이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꽃처럼 활짝 펴 아름다웠던 시절이 없었다는 쓸쓸함이 이 시의 깊이를 더합니다. 대화체로 간결하게 이어지는 물음이, 시대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와 닿는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절망은 본질의 이해에서 터져 나오는 괴로움 같은 걸까. '검은' 것들의 길에서 문득, 나는 누구의 친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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