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민들레 - 김상미

2005.04.26 19:06

윤성택 조회 수:2315 추천:217

「민들레」 / 김상미 /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민들레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
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
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
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
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
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감상]
민들레는 수백 개의 갓털이 달린 낱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쉼표와 쉼표 사이 이러한 갓털의 이미지가 마음에 흩날립니다. 그 한 표현이 어디로 날아가 앉을 지에 따라 제각각 소통이라는 꽃도 피겠지요. 이 시의 포인트는 민들레 씨앗을 ‘재’로 본 직관에 있는데,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작은 민들레는 누구의 사랑이었던 것일까, ‘너에게 꼭 한마디만’이 자꾸만 이명(耳鳴)으로 남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31 사랑 - 고영 [5] 2005.03.08 2366 219
930 잔디의 검법 - 강수 [1] 2005.01.26 1114 219
929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최갑수 2004.02.14 1665 219
928 섬 - 최금진 2002.09.30 1556 219
927 숨쉬는 일에 대한 단상 - 이가희 2002.09.25 1219 219
926 다비식 - 신용목 2002.09.13 1072 219
925 틀니가 자라는 폐가 - 이혜진 2002.09.02 1122 219
924 카니발의 아침 - 박진성 2002.06.07 1165 219
923 빙어 - 주병율 2006.03.21 1612 218
922 토기 굽는 사람 - 최승철 2005.11.28 1528 218
921 가을이 주머니에서 - 박유라 [1] 2005.11.25 1763 218
920 나에게 기대올 때 - 고영민 [2] 2005.09.26 2038 218
919 빗소리 - 김영미 2005.05.11 2007 218
918 즐거운 소음 - 고영민 2003.01.18 1208 218
917 용설란 - 최을원 2002.10.08 1121 218
916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2001.08.27 1716 218
915 나무 한 권의 낭독 - 고영민 2006.12.14 1430 217
914 지는 저녁 - 이은림 [1] 2006.09.19 2141 217
913 가방, 혹은 여자 - 마경덕 [2] 2005.12.10 1785 217
»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15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