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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 김상미

2005.04.26 19:06

윤성택 조회 수:2339 추천:217

「민들레」 / 김상미 /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민들레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
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
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
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
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
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감상]
민들레는 수백 개의 갓털이 달린 낱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쉼표와 쉼표 사이 이러한 갓털의 이미지가 마음에 흩날립니다. 그 한 표현이 어디로 날아가 앉을 지에 따라 제각각 소통이라는 꽃도 피겠지요. 이 시의 포인트는 민들레 씨앗을 ‘재’로 본 직관에 있는데, 활활 타올랐던 사랑이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존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았던 작은 민들레는 누구의 사랑이었던 것일까, ‘너에게 꼭 한마디만’이 자꾸만 이명(耳鳴)으로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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