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실명 - 최문자

2005.05.30 17:38

윤성택 조회 수:1208 추천:194

<실명> / 최문자 /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실명

        흠집이 많은 과일이 좋았다
        열망할 적마다 찌무러진 그 자리가
        흉할수록 좋았다
        한사코, 불구의 반점으로 남고 싶은
        위험한 사상은
        가을을 기다려 오히려 흉터가 되었다
        흠집이 많은 과일일수록 좋았다
        용서할 수 없어 한없이 헛구역질하던
        그 자리가 좋았다
        아플 것 다 아파본 것들
        실상은 눈이었다
        밖으로 흉하게 자란 눈이었다
        꿈꾸고 있다가 실명된 눈이었다
        감긴 눈이 많은 과일이
        나는 좋았다
        꼭 감고 흘린
        그 어두운 눈물 자국이
        더 없이 좋았다

[감상]
세상을 온몸으로 맞서온 흉한 것들에게 다시금 눈길이 가는 시입니다. 흠집에서 흉터, 그리고 실명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흐름이 직관과 어우러져 좋은 발견을 주고 있습니다. <눈(目)>은 결국 바라봄에서 나아가 희망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니 좌절하더라도 그 흠집만큼은 그 어떤 상징보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특히 미묘한 감정 전이도 이 시의 매력적인 부분인데요, 그 <좋았다>라는 울림에 산뜻하게 매료되는군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71 UN성냥 - 유형진 2005.06.07 1205 211
770 간질, 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 - 이덕규 2005.06.03 1262 216
769 봄밤 - 이기철 [1] 2005.06.02 1604 208
768 노숙의 날들 - 박홍점 [1] 2005.05.31 1246 189
» 실명 - 최문자 2005.05.30 1208 194
766 시정잡배의 사랑 - 허연 [2] 2005.05.29 1262 165
765 엘리스네 집 - 황성희 2005.05.26 1318 180
764 아직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 이수익 [1] 2005.05.25 1535 206
763 즐거운 삭제 - 이신 [1] 2005.05.24 1585 206
762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660 235
761 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한우진 2005.05.13 1545 215
760 빗소리 - 김영미 2005.05.11 2041 218
75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817 221
758 시간의 동공 - 박주택 [1] 2005.05.02 1426 194
757 구름의 뼈 - 배용제 [1] 2005.04.29 1495 188
756 문병 - 한정원 [3] 2005.04.28 1336 185
755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39 217
754 문 열어주는 사람 - 유홍준 [1] 2005.04.25 1802 186
753 장미의 내부 - 최금진 [5] 2005.04.23 1657 181
752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 - 이영옥 [2] 2005.04.22 1380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