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네 집> / 황성희 / ≪현대문학≫ 2005년 6월호, 신인추천작 中
엘리스네 집
일렁이는 수면 위로 밤하늘이 비친다.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다가온다.
놀란 그림자들이 몸 밖을 뛰쳐나간다.
물고기 한 마리가 도시락을 들고 종종걸음 칠 때의 풍경이다.
집들은 눈을 감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아무 질문도 하지 못한 지 수천 년.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지 수천 년.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자신이 물고기임을 의심치 않는다.
회색의 뻣뻣한 전봇대를 끼고 돈다.
교묘한 속임수처럼 전선이 뻗어 있다.
수면 위로 어머니가 몸을 수그리신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인다.
비늘을 떼어줄 테니 그만 물 밖으로 나오너라.
놀란 물고기는 아가미를 벌렁거린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집은
오늘도 멀기만 한데
물고기는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고
시계 속에는 시계 바늘이 없다.
[감상]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동화가 그러하듯 이 시는 동화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깊은 밤 수면 밑을 오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모성과 잇대어 놓는 솜씨가 돋보이는군요. 마치 꿈인 듯싶을 정도의 풍경과 ‘귀가’가 갖는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터무니없을지도 모를 상상을 꼼꼼한 묘사로 시상을 그러모으는 힘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