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엘리스네 집 - 황성희

2005.05.26 11:24

윤성택 조회 수:1318 추천:180

<엘리스네 집> / 황성희 / ≪현대문학≫ 2005년 6월호, 신인추천작 中


        엘리스네 집

        일렁이는 수면 위로 밤하늘이 비친다.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다가온다.
        놀란 그림자들이 몸 밖을 뛰쳐나간다.

        물고기 한 마리가 도시락을 들고 종종걸음 칠 때의 풍경이다.

        집들은 눈을 감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아무 질문도 하지 못한 지 수천 년.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지 수천 년.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자신이 물고기임을 의심치 않는다.

        회색의 뻣뻣한 전봇대를 끼고 돈다.
        교묘한 속임수처럼 전선이 뻗어 있다.
        수면 위로 어머니가 몸을 수그리신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인다.
        비늘을 떼어줄 테니 그만 물 밖으로 나오너라.
        놀란 물고기는 아가미를 벌렁거린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집은
        오늘도 멀기만 한데
        물고기는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고
        시계 속에는 시계 바늘이 없다.
        
[감상]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동화가 그러하듯 이 시는 동화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깊은 밤 수면 밑을 오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모성과 잇대어 놓는 솜씨가 돋보이는군요. 마치 꿈인 듯싶을 정도의 풍경과 ‘귀가’가 갖는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터무니없을지도 모를 상상을 꼼꼼한 묘사로 시상을 그러모으는 힘이 보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71 UN성냥 - 유형진 2005.06.07 1205 211
770 간질, 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 - 이덕규 2005.06.03 1262 216
769 봄밤 - 이기철 [1] 2005.06.02 1604 208
768 노숙의 날들 - 박홍점 [1] 2005.05.31 1246 189
767 실명 - 최문자 2005.05.30 1208 194
766 시정잡배의 사랑 - 허연 [2] 2005.05.29 1262 165
» 엘리스네 집 - 황성희 2005.05.26 1318 180
764 아직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 이수익 [1] 2005.05.25 1535 206
763 즐거운 삭제 - 이신 [1] 2005.05.24 1585 206
762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660 235
761 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한우진 2005.05.13 1545 215
760 빗소리 - 김영미 2005.05.11 2041 218
759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 문태준 [1] 2005.05.06 1817 221
758 시간의 동공 - 박주택 [1] 2005.05.02 1426 194
757 구름의 뼈 - 배용제 [1] 2005.04.29 1495 188
756 문병 - 한정원 [3] 2005.04.28 1336 185
755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39 217
754 문 열어주는 사람 - 유홍준 [1] 2005.04.25 1802 186
753 장미의 내부 - 최금진 [5] 2005.04.23 1657 181
752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 - 이영옥 [2] 2005.04.22 1380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