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내부」 / 최금진 /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장미의 내부
벌레 먹은 꽃잎 몇 장만 남은
절름발이 사내는
충혈된 눈 속에서
쪼그리고 우는 여자를 꺼내놓는다
겹겹의 마음을 허벅지처럼 드러내놓고
여자는 가늘게 흔들린다
노을은 덜컹거리고
방안까지 적조가 번진다
같이 살자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
남자의 텅 빈 눈 속에서
뚝뚝, 꽃잎이 떨어져 내린다
[감상]
행간을 건너뛰는 서사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절음발이 사내의 여자에 대한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건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라는 것에 있겠지요. 이 시에서 중요한 건 이질적인 시적 대상을 하나의 은유로 묶어내는 직관에 있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생략이 시의 곳곳 여운을 깊게 한다고 할까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미의 내부’가 이 시의 공간에서 새롭게 구현되는 것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장미) 외부는 더욱 가득 차서/ 스스로의 테두리를 닫고/ 마침내 전체가 하나의 방(房)이,/ 꿈속의 한 방(房)이 된다’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 (亞麻布)를 올려놓는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꽃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이파리와 꽃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릴케의 '장미의 내부'를 올려놓습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이 시는
과감한 생략이 있었어도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출발부터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 같은 두 남여를
감싸고 도는 삶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뚝뚝 눈물을 흘리며
살다 힘들면 그때 도망가라고 말하는 남자 앞에서
도저히 도망같은 것은 못 갈것 같습니다 ^^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설명하지 않은 압축된 시를 읽으며
절제의 미를 느끼며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