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 / 이영옥 / 2005년 ≪현대시학회≫ 봄시제 낭송시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
작업복을 입은 사내들이 식은 식빵처럼 웅크리고 앉은
그 정류장 뒤쪽 배경은 늘 맛이 바뀌지 않는 단팥빵 같았네
낮게 엎드린 지붕위로 따뜻한 연기가 몽글몽글
뜯어먹기 좋도록 몸을 부풀리고 붉은 굴뚝들은 하나같이 작달막했네
공장 담벼락 밑으로 숨죽여 지나가던 늙은 완행열차가
황급히 기적을 올리며 달아나던
적색 식용색소가 첨가된 석양이 가끔 묽어져 있던 곳
잔업시간이 길어졌거나 퇴근 버스를 놓친 사내들이
군데군데 곰팡이 핀 얼굴을 가슴에 묻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눅눅한 시간
산다는 게 갓 구워낸 비스킷처럼 바싹거리지는 않았네
구수한 바게트를 대형오븐에 수천 번을 구워냈을 숙련공도
제 생의 온도조절에 실패해 속을 까맣게 태우던
그때를 떠올리며 빈 빵 봉지처럼 웃고 있었네
옛날의 그 맛이 아닌 건빵처럼 쓸쓸한 저녁이
어김없이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다음 정류장은 주식회사 기린이었네
[감상]
한때 ‘삼립식품’으로 불리는 회사가 ‘주식회사 기린’이더군요. 부산 해운대에 회사가 있는데 이 시를 읽다보니, 그 공장의 근로자들의 모습이겠다 싶습니다. 이 시가 독특한 건 모든 대상을 ‘빵’에 관련된 비유로 이뤄냈다는 것이지요. 특히 서정을 직유법으로 끌고 가는 완급이 세련되고 매끄럽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건빵처럼 쓸쓸한 저녁’으로 녹아나는 것도 관찰의 힘입니다. 다음에 해운대에 갈 일이 있으면, 반여동 공장을 거쳐 가는 ‘다음 정류역은 주식회사 기린입니다’라는 시내버스 방송을 들어보고 싶군요.
산다는 게 갓 구워낸 비스킷처럼 바싹거리지는 않았네
마지막 연에서 건빵은
어려웠던 시절 먹었던 학교에서도 나눠주었던
그 건빵이 떠올라서 빙그르 웃습니다
옛날 건빵은 참 맛있었지요
생의 온도 조절에 실패해서 까맣게 탄...
그때를 떠오리는 지은이처럼
영 엉망이 된 나의 온도조절...
언젠가 나도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 한쪽 지워내고
나의 삶을 멋진 그림으로 그려낼 미래를 생각합니다
올려주시는 짧은 감평이 도움이 됩니다
모든 대상을 빵에 관련된 비유로
이뤄냈다는 말씀이 맘에 와 닿습니다
같은 눈으로 봐도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공부가 되는게지요
그렇구나 하고 새삼 느끼고...
좋은시 읽은 재미와 님의 감평 자꾸 기다려지는데요
댓글 열심히 달면 자주 올려주시렵니까?
님이 선택한 좋은시와 감평 기대합니다
ㅎㅎㅎ ^^* 좋은날 되십시오 윤성택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