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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몸 - 이향

2005.06.29 10:43

윤성택 조회 수:1452 추천:209

<구겨진 몸> / 이향/ 《생각과느낌》2005년 여름호


        구겨진 몸

        불 피우다 보면
        구겨진 종이가 더 잘 탄다
        주름살 많은 부채 속, 바람 접혀 있듯
        구겨진 몸에는 통로가 있다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에야 깊어지는 숨처럼
        구석에 쿡, 처박혀봐야
        뻑뻑한 등도 굽을 수 있지
        그래야 바람을 안을 수 있지

        반듯한 종이가 모서리를 들이미는 사이
        한 뭉치 종이가 불을 먼저 안는다
        구겨진다는 것은 바짝 다가선다는 것일까
        더 망칠 것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불길은 연다

        구겨진 몸이 불을 살릴 줄 안다


[감상]
불에 잘 타는 구겨진 종이를 통해 우리의 몸과 삶을 내다봅니다. 종이와 불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그 현상을 의인화로 연결하는 직관이 돋보이는군요. 결국 <바람을 안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며,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의 절망을 경험한 사람만이 <불을 살릴 줄> 아는 것이 되겠지요. 세상 구겨지거나 망가진 것들이 희망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임을 다시금 믿게 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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