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몸> / 이향/ 《생각과느낌》2005년 여름호
구겨진 몸
불 피우다 보면
구겨진 종이가 더 잘 탄다
주름살 많은 부채 속, 바람 접혀 있듯
구겨진 몸에는 통로가 있다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에야 깊어지는 숨처럼
구석에 쿡, 처박혀봐야
뻑뻑한 등도 굽을 수 있지
그래야 바람을 안을 수 있지
반듯한 종이가 모서리를 들이미는 사이
한 뭉치 종이가 불을 먼저 안는다
구겨진다는 것은 바짝 다가선다는 것일까
더 망칠 것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불길은 연다
구겨진 몸이 불을 살릴 줄 안다
[감상]
불에 잘 타는 구겨진 종이를 통해 우리의 몸과 삶을 내다봅니다. 종이와 불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그 현상을 의인화로 연결하는 직관이 돋보이는군요. 결국 <바람을 안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며,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의 절망을 경험한 사람만이 <불을 살릴 줄> 아는 것이 되겠지요. 세상 구겨지거나 망가진 것들이 희망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임을 다시금 믿게 하는 시입니다.
구겨진 종이를 보면서 느낀 화자의 생각이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여서 읽으면서도 기쁨이됩니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우는 사람의 고통을 아는것이지요
바닥에 내려가본 사람만이
바닥에 앉아 우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것입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해 본 사람만이
구겨진 인생들에게 희망으로 팻말을 공중에 걸어 놓을 수 있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