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구겨진 몸 - 이향

2005.06.29 10:43

윤성택 조회 수:1423 추천:209

<구겨진 몸> / 이향/ 《생각과느낌》2005년 여름호


        구겨진 몸

        불 피우다 보면
        구겨진 종이가 더 잘 탄다
        주름살 많은 부채 속, 바람 접혀 있듯
        구겨진 몸에는 통로가 있다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에야 깊어지는 숨처럼
        구석에 쿡, 처박혀봐야
        뻑뻑한 등도 굽을 수 있지
        그래야 바람을 안을 수 있지

        반듯한 종이가 모서리를 들이미는 사이
        한 뭉치 종이가 불을 먼저 안는다
        구겨진다는 것은 바짝 다가선다는 것일까
        더 망칠 것 없다는 듯
        온몸으로 불길은 연다

        구겨진 몸이 불을 살릴 줄 안다


[감상]
불에 잘 타는 구겨진 종이를 통해 우리의 몸과 삶을 내다봅니다. 종이와 불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고 그 현상을 의인화로 연결하는 직관이 돋보이는군요. 결국 <바람을 안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며, <밑바닥까지 굴러본 뒤>의 절망을 경험한 사람만이 <불을 살릴 줄> 아는 것이 되겠지요. 세상 구겨지거나 망가진 것들이 희망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임을 다시금 믿게 하는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791 적빈 모정 - 조성국 [4] 2005.07.13 1273 210
790 사랑의 역사 - 이병률 [2] 2005.07.12 1719 191
789 어둠과 놀다 - 이상국 [2] 2005.07.11 1411 200
788 그리운 이름 - 배홍배 [1] 2005.07.08 1907 203
787 날마다 벗는다 - 이은림 2005.07.07 1505 202
786 안과병동이 있는 뜰 - 노향림 2005.07.06 1153 184
785 공터의 사랑 - 김재홍 [1] 2005.07.05 1282 198
784 갈대 - 조기조 [3] 2005.06.30 1663 192
» 구겨진 몸 - 이향 [2] 2005.06.29 1423 209
782 부재중 - 김경주 [3] 2005.06.24 1991 196
781 해바라기 공장 - 이기인 [1] 2005.06.23 1715 230
780 밤바다 - 권주열 [1] 2005.06.22 1532 239
779 주름들 - 박주택 [1] 2005.06.21 1379 236
778 잠 속의 생애 - 배용제 [1] 2005.06.17 1426 222
777 정전기 - 김향지 [2] 2005.06.16 1271 197
776 기차 소리 - 심재휘 [1] 2005.06.15 1589 204
775 교통사고 - 김기택 [4] 2005.06.14 1640 221
774 그림자 - 안시아 2005.06.13 2081 212
773 꽃의 흐느낌 - 김충규 2005.06.09 1895 204
772 몸이 스스로 제 몸을 찾아가고 - 이윤훈 2005.06.08 1170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