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병동이 있는 뜰〉 / 노향림/ 2005년 《현대시학》7월호
안과병동이 있는 뜰
처음 회진 나온 손전등처럼
하느님의 눈이 껌벅 껌벅 비춘다
얼굴 파묻은 시린 말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늑골을 보인 몇몇은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제 몸이 누렇게 시드는 줄도 모르고
통째로 돌아앉은 잔디밭
한바탕 훑고 지나가는 돌개바람 속에
키 큰 나무들에 안겨서 눈 감고 있던
어린 잎새들이 갑자기 털려 나가는 소리
아직 아무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네 귀가 반듯한 뜰이 들것에 들려서 있다
품이 넓은 하늘이 낮게 내려와
구름장같은 누구의 헌 옷을 들고 있나
귀퉁이엔 넌출 없는 넝쿨식물들이
지독한 근시로 드문드문 앉아 있다
병명이 나오지 않았는지 마냥 서성이는
적막들의 뒷모습이 캄캄하다
병동은 멀리 있다
찰칵! 하느님의 눈에 찍힌 새벽 한컷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 일대가 환하다
[감상]
번개가 치는 병동의 뜰을 의인화한 풍경이 이채롭습니다. 하필 안과병동인 뜰에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네 삶과 같은 사물이 있는 것인지요. 환자가 아닌 것 같지만 환자인 이 사물을 지켜보는 '하느님'의 존재는 종교적 접근보다는 진정성에 가깝게 읽힙니다. 특히 마지막 두 행이 강렬함을 주는데, 이는 숨겨진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주위에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많습니다.